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라자가 토마시를 찾아가서 만나는 장면이 있다. 그녀는 한 손에 들고 있는 '안나 카레니나'를 그녀와 토마시 사이에 존재하는 문의 열쇠로 여겼다. 과연 그 책이 그 때 당시의 교양을 대표할 만큼 대단한 책이었는지 막연하게 궁금했다. 톨스토이 대표작으로 '전쟁과 평화'나 '부활'이 더 유명하지 않나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안나 카레니나'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여러 문구들을 여기 저기에서 보게 되었다. 특히 동시대의 거장, 도스토예프스키는 '안나 카레니나'를 짤막하게 '완벽한 예술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제는 책을 읽을 만반의 준비가 갖춰졌다. 이 두툼한 책을 읽을 시간만 할애하면 된다.
일독하는데 꼬박 4주가 걸렸다. 3권이었지만 권당 500쪽이 넘는 상당한 분량이었다. 안나와 레빈을 중심축으로 19세기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에서 일어나는 주변 인물들과의 고뇌와 갈등을 다뤘다. 안나를 통해서는 사랑, 이혼에 대하여 레빈을 통해서는 노동, 결혼, 죽음, 종교에 대하여 다양한 주제를 끌어냈다.
19세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서 사교계는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에서 사교계 입문을 위한 젊은 청년의 처절한 모습이 생각났다. 사교계는 상류 계층의 사람들끼리 회자되는 소식를 공유하고 다양한 소문이 오고 가는 사적인 모임일 뿐이지만, 그들은 그러한 모임에 초대받고 참여하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었다. 허례 허식이 없고 올곧은 성격인 레빈은 그들이 '교양'이라고 떠들어대는 대화를 혐오했다. 얕은 지식으로 아는 척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랄까. 작품 말미에 사교계의 평판을 중시하는 브론스키의 면면은 결국 안나와의 극한 갈등을 야기시키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위해 남편과 자식을 버린 안나의 모습을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을까. 이혼은 법적 제도로 갖춰져 있지만 사회 분위기 상 철저히 금해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안나는 남편과의 관계보다 아들 세료자 간의 관계를 끊지 못하는 모습에서 예나 지금이나 자식 사랑에 대한 부모 마음이 변치 않음을 보여줬다. 진정한 사랑을 찾아나갈 권리와 부모로서 자식을 부양할 권리 간의 충돌을 바라보며, 무엇이 인간의 삶의 최선인지 고민하게 했다.
레빈의 친형 니콜라이의 죽음 직전의 모습에 레빈은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곤혹스러워했다. 반면 무엇이 니콜라이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임을 꿰뚫고 있는 레빈의 아내 키티는 오랫동안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돌 본 경험으로 니콜라이의 죽음 앞에 의연하게 대처했다. 책을 통해 죽음을 인식해온 레빈이 실재적 죽음 앞에 굳어진 모습에서 직접적인 경험을 수반하지 앎은 허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작품의 말미에 레빈은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고민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이러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해 괴로워했다. 결국 그는 지식이나 이성으로 그것을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종교적인 믿음이 그가 고민하는 물음의 해답이 될 수 있음을 제시했다. 레빈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고,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무신론자인 나 또한 과학으로 설명하지 못한 종교의 영역을 마냥 거부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톨스토이의 작품을 처음 접하면서 19세기 사실주의 소설이 무엇인지, 탁월한 심리 묘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회였다. 톨스토이 또한 누구로부터 이런 영향을 받았겠지만, 현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들은 이 대가로부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을까. 인간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의식과 무의식의 총합이 이렇게 텍스트로 질서 정연하게 나타나는 사실이 책을 읽는 내내 경이로웠다.



